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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안전성및제약정책

어린이 감기약, 진실 혹은 거짓!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약국을 첫 직장으로 잡았을 때가 10년 전 딱 이맘때쯤, 날씨가 매일 매일 변덕을 부리던 때였다. 경기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그 동네에 유난히 많이 살았던 젊은 엄마 아빠들은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하고 가래를 그르륵 거리는 아이들을 안고, 업고 약국을 찾았고 나는 종일 분쇄기를 돌려 아이들의 감기약을 조제하거나 시럽을 판매했다.

지금은 약국에서 근무하지 않지만, 종종 선후배들의 약국에 가보면 여전히 분쇄기는 돌아가고 있고, 약장에는 감기약 시럽이 종류별로 즐비하다. ‘감기에는 약이 없다'는 학교 때 배운 진실 따위는 여기저기 그득한 감기약들을 보면 발가락 하나 들이밀 자리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너무 자괴감이 들지 않았던 것은 ‘내 환자, 내 자식에게 먹여보니 괜찮아지더라’는 ‘경험적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경험을 근거로 약의 안전이나 효과를 일반화시키기에 내 자식, 내 환자의 수는 아쉽게도 너무 작은 숫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각 국가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2005년 밝혀졌다. 미국 TESS(중독노출조사계)는 기침약, 감기약, 항히스타민제(주로 콧물약)를 먹은 어린이들 중에서 과량복용 했거나 부작용이 있었다고 보고한 사례가 80,000건을 넘는다고 밝혔다. 심지어 미국 식품의약국은 1969년부터 2006년까지 122명의 어린이가 감기약을 복용하고 사망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어린이에게 감기약을 먹이는 것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약은 태생적으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고, 그래서 효과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보고서와 논문들은 어린이 감기약과 밀가루약(플라세보)을 비교해 보았을 때 효과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고 미국, 캐나다, 영국 보건당국도 이 사실을 인정하여 2008년 1월부터 ‘우선적으로’ 2세 미만 어린이에게는 감기시럽약 판매를 금지시켰다. 해열제를 제외한 모든 기침, 콧물, 가래, 종합감기약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위험에 취약하다고 판단된 2세 미만에 대해 ‘우선적’으로 조치를 취한 후 각 국 정부는 2세 이상의 감기약 사용에 대해서도 조사를 계속하였다. 결국, 2008년 12월 캐나다는 전 세계 데이터를 조사한 후 6세 미만 어린이에게 감기약 사용을 금지시켰고, 영국이 그 뒤를 이었으며 미국도 현재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미국의 조치를 따라 2세 미만 감기약 사용을 금지시켰으나 여전히 시중에서는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더군다나 2세 이상에 대한 사후조치도 전혀 없다. 한국 아이들만 감기약의 온갖 부작용과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는 울트라 슈퍼 유전자를 가진 게 아니라면 명확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감기에 대한 진실은 한가지다. 감기는 보통 1주일이면 저절로 낫게 된다는 것, 충분한 수분섭취와 휴식보다 좋은 약은 없다는 것, 감기약이 결코 폐렴이나 합병증을 예방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