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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지_건약

rivew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2

[2010 봄호]

[review]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울산지부 류효성

 

책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늦게 시작한 트위터에서 노회찬 의원의 승소판결을 접하고 조금씩 알게 된 삼성이라는 자본의 폭력성과 몰상식에 대해 처음엔 꽤나 놀랐던 기억이 나고, 김용철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책이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나 아닌 누구에게나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분노’,’놀라움’ 등으로 표현되는 이 책에 대한 감상들과는 조금 달리, 스스로가 움츠러든다는 느낌을 책을 놓을 때까지 떨칠 수 없었다. ‘현상과 본질’이라는 말을 일찍 접했던 경험이 있어서였을까? 이 사실들의 놀라움과 분노는 그 정도의 차이만을 낳을 뿐이지, 사실 자체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 거론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직업들. 자본의 권력에 편승하여 생활의 안위를 보장받는 선택은 스스로 했으되, 처음부터 양심의 불편함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대가의 달콤함과 ‘머리보다 몸이 더 기억력이 좋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불편함은 쉽게 녹아내려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 뿐이며, 다만 그런 선택의 판단 근거들 중에서 ‘힘’이라는 것이 우선순위가 높았을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자본’이 가장 큰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조금은 더 서글프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서글픔’이 모여서 ‘분노’가 되고, 그 ‘분노’가 변화를 위한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기억과 내 짧은 판단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살아가며 부딪히는 여러 다툼들 속에서, ‘법대로 하자’고 외치는 사람은 언제나 억울하고 약한 사람들의 마지막 외침이었으나, 오히려 그 법이 그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설마 설마 하며 결국은 확인하게 되는 세상 그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 필요악으로 만들어진 것이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법은 ‘최소한’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믿고 싶다. 하지만, 몸으로 부딪히는 세상은 그 ‘최소한’이 ‘가진 힘이 최소한인 자’가 아니라, ‘최소한의 힘 가진 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피가 베어날듯한 상처를 남기면서 가르쳐 준다.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시켜주는 사실은, ‘법’,‘법을 적용하는 자’, 그 소수의 ‘힘 가진 자’들의 머리 위에 ‘자본가’라고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노동자가 사장 한명의 의지를 이길 수 없는, 결국 따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진실을 뼈아프게 가르쳐 주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움츠러든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나의 지금의 위치가 어디인가 하는 떨쳐지지 않는 질문 때문이었다. 땀을 흘리고, 상처가 나면서 얻는 수입은 언제나 부족함에 비해서 나의 한 치 혀로 벌어들이는 쉬운 수입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이었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생각이 변명으로 여겨져 그 불편함을 더욱 무겁게 했다. 하지만, 정말로 아플 만큼 불편했던 사실은 나 자신이 살아 온 모습이 양심이 녹아 없어진 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기억들 때문이었다. 약국을 감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과 친하게 지내려 했던 기억, 몇 백만원짜리 양복은 아니지만 비싼 옷을 입고 싶어 했던 기억, 내 아이만큼은 조금 더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바라고 인사하기를 당연히 생각했던 기억, 이런 기억들 때문에 불편할 뿐 아니라, 그런 일들을 하면서 ‘남들보다 일처리 능력이 좋다’,‘수완이 좋다’ 는 생각을 했던 나의 모습이 내내 떨쳐지지 않았다. 정도와 장소와 위치가 다를 뿐 김용철변호사가 반성하는 부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우리는 늘 지는 싸움만 한다.’,‘승리하는 불의보다 패배하는 정의를 택한다’ 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고, ‘내가 김용철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사람을 갈대에 비유했던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또 다시 젖어들 생활 속에서 지금의 마음이 쉽게 흔들려 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러기 위한 따뜻한 눈길과 함께 잡은 따뜻한 손들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다행히 참 많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복이 있었다. 함께 나누는 법을 더 고민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