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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제도및복지정책

다음 영화들의 공통점은?


답)

왜 영화 속 생계형 범죄의 동기는 늘 ‘병원비를 대려고...’ 일까?



난 영화광까지는 아니지만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예전에는 영화관에 혼자서도 잘 갔는데 1년치 통신사 포인트 할인카드를 반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미리 다 써버릴 정도로 다닌 적도 있다. 요즘에는 주머니 사정도 그렇고 같이 영화 보러 갈 사람도 없는 까닭에 집에서 혼자 시간을 죽일 때 인터넷으로(물론 유료로)자주 본다. 난 특히 ‘스릴러’, ‘미스테리’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끝까지 결말을 알 수 없는 궁금증과 긴장감,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생각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을 매력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지난 해 개봉한 한국 영화, ‘트럭’을 보았다. 생계를 위해 화물운송용 트럭을 운전하는 주인공이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사람 시체까지 나르게 되는데 공교롭게 연쇄살인범이 트럭에 같이 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나름 재밌게 보긴 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나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나라 영화 속 범죄의 주된 동기는 가족의 수술비 마련 같은 의료비일까? 하는 것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줄거리 요약에도 대체로 ‘병원비를 대려고...’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 드라마들도 마찬가지... 눈여겨 보면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내가 주로 하는 일이 ‘약값’이나 ‘영리병원 도입’문제와 같은 의료에 관한 이슈이기 때문에 그것만 보이는 것 아니냐고 하기에는 이런 레파토리는 심심찮게 다뤄지고 있다. 더군다나 그런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오직 한 사람이고 한 때 집안이 병원비 때문에 풍지박산 난 경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영화, 저 영화에도 나오는 ‘병원비를 대려고...’라는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최근에 개봉한 한국 영화 ‘핸드폰’에서도 대형 할인마트에서 일하는 남자 주인공이 우연히 주운 핸드폰으로 핸드폰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속에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직접적인 범행의 동기는 아니지만 ‘역시 입원실에 몸저 누워있는 어머니와 그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박봉의 현실’이 사건의 배경과 주요한 갈등으로 한 몫을 한다.

 

좀 오래된 영화지만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 ‘복수는 나의 것’을 보자. 거기서도 청각장애인 저소득층 노동자 주인공은 신장병을 앓고 있는 ‘하나뿐인 누이에게 이식할 신장을 구해주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애인과 함께 어린아이를 유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물론 이식할 신장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신장이식 수술비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또 있다. 흥행작은 아니지만 마지막 극적인 반전이 일품이었던 성현아, 명계남, 성지루 주연의 ‘손님은 왕이다’에서 성실한 동네 이발사 성지루에게 끝없는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고 아내까지 넘보다 결국 죽게 되는 파렴치한, 명계남의 범행 동기도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딸의 생계와 재활치료비를 죽기 전에 마련해 두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병원비를 대려고...’ 레파토리는 우리나라 영화에서만 나올까? 물론 아니다.

 

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 제도를 가지고 있는 한국보다도 더 의료 현실이 열악한 유일한 선진국, 미국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이 같은 현실을 관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의료현실이 폭로되기 전에 이미 그런 내용을 다룬 영화가 있었다. 덴젤 워싱턴의 리얼한 연기가 돋보이는 ‘존큐’가 그것이다. 단란한 가정의 자상한 아버지였던 존큐는 심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아날 가망이 없는 ‘아들의 막대한 수술비 때문에 병원을 점거하고 인질극까지’ 벌이게 된다. 아버지의 입을 통해 가난한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미국의 의료제도인 HMO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최근에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중에는 ‘어둠속의 댄서’가 있다. 체코에서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으로 이민 온 가난한 노동자 여주인공은 점점 시력을 잃는 유전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같은 병을 앓는 아들이 장님이 되기 전에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밤낮으로 일만 하지만 모은 돈 마저 윗집 남자가 훔쳐 간다. 우연찮게 복수를 하지만 결국 사형당하고 만다는 슬픈 얘기다.

그런데 왜 이런 줄거리는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을까? 미국영화의 홍수 속에서 다른 나라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지만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진 영국이나 프랑스 영화에서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잘 보질 못했다. (혹시라도 본 사람이 있다면 제보 주시길...) 추측컨대 그런 나라에서는 병원비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비를 100% 가깝게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보니 병원비 때문에 일을 저지를 확률이 매우 적을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민간보험이 중심이 된 의료 체계로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이 5,000만명이 넘고 설령 가입했다 하더라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지금은 많이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적 건강보험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가 많고 보장성도 충분하지 않아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가족의 병원비가 집안을 거덜내고 범죄의 동기가 되는 단골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병원비를 대려고...’의 생계형 범죄는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더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정부는 보장성 강화는커녕 보장성을 더욱 악화시킬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다행히도 의료민영화의 첫 단추로 꿰려고 했던 영리병원 도입을 얼마 전에 잠깐 접었다는 소식에 한 숨을 놓기는 했지만 계속 진행형이라니 안심할 수는 없다. ‘돈벌이 병원’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얼마 전 ‘돈 없으면 영리병원 안 가면 될 것 아니냐?...’라고 투덜거렸단다. 돈 없으면 아프더라도 안가도 되는 게 병원인지는 위에서 다룬 영화를 보면 알 것 아닌가? 제발 한 편이라도 좀 보시고 말씀하시길...

 

언제쯤 우리나라 영화 속에서 ‘병원비를 대려고...’ 하는 식상한 레파토리를 안볼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