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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제도및복지정책

영리병원 도입과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권고한 OECD 보고서는 보건의료의 개혁이 아닌 심각한 퇴보를 가져올 것이다


[논평] 영리병원 도입과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권고한 OECD 보고서는 보건의료의 개혁이 아닌 심각한 퇴보를 가져올 것이다.

- 의료민영화와 경쟁친화적 정책보다는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통한 보편적 복지확대를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는 15일 ‘2010년 한국경제보고서’(이하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의료지출이 두자리 수로 인구노령화와 더불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히며, 보건의료분야의 개혁과 관련하여 몇가지 권고안을 제시했다.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하여 행위별 수가에 따른 지급방식 변경, 의약품 지출 감축, 건강한 고령화 촉진을 위한 주치의 제도 도입 등을 통해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며 조세수입확대를 통한 의료지출의 재원조달 방식을 제안했다. 또한 저소득가구나 만성질환자가 필수적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높은 본인부담률를 낮추는 방안과 환자 진료성과에 대한 투명성 제고를 통한 의료서비스의 품질 향상에 대해서도 권고했다.

이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이하 건약)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건전화와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꾸준히 주장해 왔던 내용과 일목상통하는바 정부 또한 이에 귀 기울여 보건의료분야 개혁과제를 수행해마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에 덧붙여 약국에서만 일반의약품를 판매할 수 있게 하는 규제를 점진적으로 철폐하면 경쟁이 촉진되어 의약품 가격이 인하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의 설립과 병원간의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라 밝힌바 이러한 OECD의 권고사항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이에 대한 건약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것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현 의료법이 의료인과 비영리기관만이 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되어있는 현체계 하에서도 실질적으로 이들이 영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고있으나, 이는 ‘비영리’와 ‘영리’의 차이를 모르는 무식한 소리이다. 의료법인의 영리와 비영리를 결정짓는 기준은 병원자본의 외부유출 가능여부이지 운영상의 수익추구 성향만으로 영리적으로 운영된다고 함은 보고서의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또한 환자들의 가장 큰 불만사항이라는 의료서비스의 질 문제가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인가? 영리의료법인 체계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의료서비스의 질을 평가한 서비스 랭킹 10위안에 드는 병원 중의 7개 병원은 비영리 의료법인이다. 병원의 영리화가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임이 자명하다.

 

-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을 자본투자자들의 수익창출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려 하는가?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된다면 물론 의료기관으로의 재원조달은 원활해 질 것이다. 그러나 이로인한 수익금은 환자들의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해 쓰여지지 않는다. 사적자본의 유일한 관심사는 수익성의 최대화이므로 영리병원을 허용한다함은 병원을 ‘환자의 치료’가 아닌 ‘자본투자자들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자본은 경쟁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으로 더 많은 의료서비스 상품을 만들어내어 국민의료비를 증가시킬 것이다. 더욱이 의료법인간 인수합병을 허용한다면 거대자본의 힘을 가진 의료기관의 독점이 가속화될 것이며, 이는 중소병원 및 동네의원의 몰락을 가져와 1차의료체계를 붕괴시킬 것이다.

 

- 영리병원의 도입과 병원간 인수합병 허용은 환자의 생명을 거대자본의 먹이감으로 던져주는 짓이다.

영리병원 도입과 의료법인간 인수합병 허용은 결코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한 방안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미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병원경원지원회사설립, 의료법인의 인수합병허용, 의료기관의 채권발행 허용, 건강관리서비스의 상품화 등 숱한 의료민영화 악법을 추진해왔다. 누구를 위한 일자리 창출과 지속성장인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거대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건강은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이번 OECD 보고서를 빌미로 정부가 의료민영화 정책추진에 가속을 가하는 악수를 둘까 심히 우려스럽다. 의료서비스의 품질문제를 국민대다수가 반대하는 의료민영화를 통해 개선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민심에 의한 정권의 좌초를 불러올 것이다.

 

- 일반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로 의약품의 가격이 내려갈 것인가?

보고서는 비용억제를 위한 의료시스템 개혁의 일환으로 일반의약품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여 약국외 판매를 허용함으로서 경쟁을 촉진시키면 의약품 가격이 인하될 것이라 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나 노르웨이의 사례를 보아도 약국시장 규제완화정책은 일반의약품에 대한 독/과점을 불러오는 효과를 나타내어 중소규모 업체의 시장진입을 저해하는 효과를 나타냈을 뿐 의약품가격이 인하되었다는 뚜렷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경쟁친화적 정책은 되려 일반의약품에 대한 비용을 순전히 환자들에게 전가시키겠다는 정부의 자본친화적인 국민 기만행위다.

 

- 일반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신중히 결정되어야 한다.

소비자의 권익신장이라는 이름으로 주장되는 self-medication제도는 정부의 보건복지재정절감, 환자의 편리성 및 시간 절약 등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장점이 있는 반면, 자가진단에 따른 의약품 오남용, 약물간 상호작용 발생, 노인환자 및 어린이들과 같은 위험군에 대한 부작용 발현, 제약사의 무분별한 판촉활동에 의한 잘못된 의약정보의 만연 등과 같은 사회적 단점도 존재한다. 올바른 self-medication 제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반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를 허용한다고 해서 얻어지기 보다는 소비자들이 의사나 약사로부터 올바른 일반의약품 사용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를 활용하여 소비자가 안전하고 효과있는 일반의약품을 복용함으로써 질병의 상태를 개선하였을 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OTC 의약품의 사용은 환자와 전문가사이의 상호책임을 수반하고 있는만큼 정책을 결정함에는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 의료민영화와 경쟁친화적 정책보다는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통한 보편적인 복지확대를 주장한다.

앞서 논의한바와 같이 이번 OECD 경제보고서에서 언급하는 의료민영화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경쟁을 통해 의약품의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한 반면, 충분한 고찰과 사회적 합의없는 섣부른 제도시행이 불러올 사회적 부작용은 돌이킬수 없을 만큼 그 폐해가 심각함이 자명하다. 과도한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보고서에서도 언급하는 바와 같이 행위별 수가제도, 과다약제처방 억제, 불법 리베이트 근절 및 복제약의 가격인하 등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민들을 의료의 사각지대로 몰고갈 것이 분명한 의료민영화보다는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통한 보편적인 복지확대가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확실한 방안이 될 것이다.

    

2010년 6월 16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