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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슈& 알아야할세상

노동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미디어 충청 -최세진 기자

노동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노동절 특집 기획] 1897년 로자 룩셈부르크

이 글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1894년에 정리한 ‘노동절의 기원은 무엇인가?(What are the origins of May Day?)를 번역한 것입니다. - 출처 : 로자 룩셈부르크 선집(Selected Political Writings of Rosa Luxemburg)

‘자유로운 영혼’, ‘붉은 장미’, ‘혁명의 불꽃’으로 불리는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1919)는 폴란드에서 유태인의 딸로 태어나 주로 독일에서 활동한 혁명가이다. 당시 남성들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여성이며 장애인이었던 로자는 탁월한 이론과 연설로 독일 노동자들을 사로잡았다. 독일에서 민족주의와 개량적 사민주의에 맞서 싸우던 로자는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레닌의 관료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로자는 독일의 노동자들이 봉기를 이끌다가 1919년 1월 15일 반혁명군에게 체포되어 개머리판에 맞아죽었다. 그 시체는 인근 운하에 버려졌다가 4개월 후에 발견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해 무산 계급의 휴일 행사를 활용하자는 멋진 생각은 호주에서 시작되었다. 1856년, 호주의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위한 시위로 하루 총파업과 집회, 행사를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이 행사는 당시 4월 21일에 진행되었다. 처음에 호주 노동자들은 이 행사를 1856년 한 해에만 진행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 첫 행사가 호주의 무산 계급 대중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이들을 북돋우고, 새로운 선동의 단계로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 호주 노동자들은 이 행사를 매년 반복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노동자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스스로 결정한 대중 파업보다 그들에게 더 커다란 용기를 주고, 그들이 가진 힘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게 어디에 있겠는가? 작업장과 공장에서 영원히 노예 신세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군대로 결집하는 것보다 무엇이 더 많은 용기를 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호주에서 시작된 무산 계급의 행사라는 생각은 다른 나라들에 받아들여져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마침내는 전 세계의 무산 계급이 이 생각을 받아들였다.

호주의 사례를 가장 먼저 따랐던 사람들은 미국의 노동자들이었다.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은 5월 1일을 전면 총파업의 날로 결의했다. 그리고 이 날 200,000명의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나 8시간 노동제를 요구했다. 그 후 수년간은 경찰들과 법률적인 탄압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시위를 전개하지 못했다. 하지만 1888년 미국의 노동자들은 당시 결의를 다시 살려서 1890년 5월 1일에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의했다.

그 사이 유럽의 노동운동은 강해지고 활기가 넘쳤다.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제2사회주의인터내셔날 회의(International Workers' Congress)에서 노동운동의 가장 강력한 모습이 드러났다. 400여명의 각국 대표가 참가한 이 회의는 8시간 노동제를 가장 우선해서 요구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그 후 레빈(Lavigne)에서 보르도(Bordeaux)에 이르는 프랑스 노동조합 대표들은 이 요구를 전 세계에 걸친 총파업을 통해 표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노동자들의 대표는 그의 동지들이 1890년 5월 1일 파업을 결의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주의를 환기시켰고, 제2사회주의인터내셔날 회의는 5월 1일 전 세계의 무산계급이 행사를 열기로 결의했다.

30년 전 호주의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당시 노동자들은 단 한 차례 시위를 하리라고 생각했었다. 제2인터내셔날은 8시간 노동제를 위해 1890년 5월 1일 전세계의 노동자들이 함께 시위를 하기로 결의했다. 아무도 이 행사가 그 다음 해에도 계속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 계획이 얼마나 성공적일지, 얼마나 빨리 노동계급에게 받아들여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딱 한 번의 노동절 행사는 모든 사람이 노동절이 매년마다 관례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제의 도입을 요구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도 노동절은 중단되지 않았다. 유산계급과 지배계급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는 한, 모든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은 이상, 노동절은 해마다 이 요구사항들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좋은 날 새벽이 밝으면, 전 세계의 노동계급이 해방을 쟁취하면, 진정한 인간애는 노동절을 과거의 쓰라린 투쟁과 수많은 고난의 시기의 영광을 기리는 날로 삼게 될 것이다.

이 회의(1989년 제2사회주의인터내셔날 파리 회의)는 국제적인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의한다. 그러므로 약속한 날 모든 국가와 모든 도시의 근로 대중은 각국 정부에게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더불어 파리 회의의 다른 요구사항 역시 이행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1888년 11월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미국노동총연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Labor)의 대표자회의에서 1890년 5월 1일 비슷한 시위를 전개하기로 이미 결의한 바 있으므로, 이 날을 국제적인 시위의 날로 채택한다. 다양한 국가의 노동자들이 각국의 상황에 따라 이 시위를 조직할 것이다.


                                                               - 2008.4.28  미디어 충청 -최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