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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안전성및제약정책

새로 나온 약은 모두 더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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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효 검증 때 ‘기존 약’ 아닌 ‘가짜 약’과 비교
임상시험 제한적·부작용 확인도 미흡 ‘불안전’
“제약사 접촉 빈도가 의사 처방에 더 영향준다”

당뇨가 있어 혈당을 내리는 약을 먹던 환자가 미국에 다녀온 뒤 ‘아반디아’라는 신약을 처방해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환자와 함께 인터넷을 검색해 관련 논문들과 정보를 찾았고 결국 ‘아반디아’의 약효가 더 좋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어 약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의사와 환자는 보통 새로운 약을 좋아한다. 새 약이 기존에 쓰던 약보다 효과가 더 좋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그럴까? 우선 신약의 판매허가와 약효검증 과정을 보자. 이때 약의 효과를 이전 약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밀가루 등으로 만든 ‘가짜 약’(플라시보)와 비교한다. 때문에 새 약이 플라시보보다 낫다는 것은 알 수 있어도, 이전 약보다 효과가 더 나은가는 알 수 없다. 안전성은 어떠한가? 새 약은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많아야 수천명의 보통 사람이나 환자에게 약을 써 본다. 심각하지만 흔하지 않은 부작용은 파악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대개 중병을 앓고 있거나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은 제외되기 때문에, 약이 나온 뒤 이런 환자들에게는 안전성이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아반디아는 당뇨병 치료제로 최근에 개발됐고, 당뇨 약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인 혈당이 너무 떨어지는 문제가 비교적 적은 약으로 알려져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2007년 미국의 저명한 의학잡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아반디아가 심근경색의 발생을 43%, 심·혈관질환에 따른 사망을 63%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에 대해 많은 논쟁이 벌어진 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아반디아에 심·혈관질환 위험에 대한 경고 문구를 강화했다.

더 극적인 예는 2001년 판매를 중지한 ‘바이콜(우리나라 상품명 리포바이)’이라는 고지혈증 치료제이다. 무려 31명이 근육이 녹아내리는 부작용으로 사망한 뒤 결국 제약회사가 자발적으로 판매를 중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판매가 중단될 때까지 24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새로 나온 약은 대부분 값이 기존 약보다 비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비싼 약이 효과도 더 좋아야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가지 예로, 고혈압 치료에 쓰이는 ‘싸이아자이드’의 가격은 한 알에 9원이다. 이 가운데 30%를 환자가 부담하니 실제 내는 약값은 3원이다. 다른 고혈압 치료제 한가지는 한 알에 1333원으로 싸이아자이드의 150배에 이르지만 약효는 싸이아자이드와 별로 차이가 없다. 2002년 <미국의사협회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싸이아자이드와 같은 이뇨제가 새 약에 견줘 뇌졸중, 심부전 등 합병증이 덜 발생했다고 한다. 이 이뇨제는 수십년 동안 수많은 고혈압 환자에게 쓰였으므로 심각한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 고혈압특별위원회는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에서 이를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이뇨제의 사용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값이 싸고 효과가 좇만?안전성도 인정된 약제를 두고, 왜 의사와 환자들은 값 비싸고 효과도 더 낫다고 할 수 없으며 안전성이 덜 확실한 신약을 더 좋아할까? 우선 제약회사의 판촉활동을 무시할 수 없다. 제약회사는 때로는 편법적이고 비합법적인 방법을 포함해 여러 수단을 통해 의사의 처방에 영향을 끼친다. 제약회사와 접촉 빈도가 의사의 처방에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있다.


새로운 약이 좋은 약일 것이라는 환자의 생각에도 원인이 있다. 환자에게 전문약을 직접 광고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특정약의 처방을 의사에게 요구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전문약 광고가 허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언론 보도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얻은 환자들이 새 약의 처방을 요구하곤 한다.

과거에 아스피린이나 페니실린 같은 새 약은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오는 새 약 가운데 ‘완전히’ 새로운 약은 드물고, 효과도 기존 약보다 월등하게 좋은 경우가 별로 없다. 때문에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치료제를 오랜 기간 먹었는데 효과도 괜찮고 큰 부작용이 없었다면 새로운 약으로 바꿀 이유는 없다.

조홍준 울산의대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