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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슈& 알아야할세상

신호등 안 지키는 사람 많아진다고 무단횡단을 합법화하는가?

신호등 안 지키는 사람 많아진다고 무단횡단을 합법화하는가?

- 불법 임의비급여를 고작 어설픈 합법으로 포장하는 것이 대안인가?

 

지난 8월 1일부터 허가 또는 신고범위를 초과하는 약제의 사용, 즉 ‘의학적 임의비급여’에 대한 전면 사용금지 조치가 해제되었다. 정부가 그간 알게 모르게 쓰이던 수많은 비급여 불법의약품을 양성화한다면서 합법의 틀 안에 넣겠다는 것인데 불법행위에 합법을 가장한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비급여 약제비 영역에 얼마나 많은 돈을 국민들이 쏟아 붓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점점 더 비급여 처방행위는 늘어나기만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약제비에 한해 정부의 양성화 계획이 나온 것이지만 불법행위를 합법적으로 할 길을 터 주었으니 앞으로는 진료비를 포함한 다른 모든 의료서비스 영역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환자가 병원에 지불하는 소위 ‘병원비’ 중에 비급여 항목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얼마 전 서울시내 모 종합병원에서 탈장수술을 받았는데 총 진료비 중에 선택진료비, 1인 병실료 등 비급여 항목 금액이 수술비보다 훨씬 더 많았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50%를 갓 넘는 상황에서 더욱 보장성은 악화되고 정부와 국민,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과 환자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불법 비급여 처방이 공공연히 많은 의료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이를 정부의 관리영역으로 가져오기 위해 합법적 행위로 승인한다는 것은 마치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널 때 신호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니까 무단횡단을 합법화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이다. 가능한 한 원칙을 준수하고 예외적인 경우라도 원칙의 틀 안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의학적인 근거가 있다면 급여로 인정하면 될 일이지 환자에게 비용을 합법적으로 떠넘겨서 될 일이 아니다. 급여로 인정해 주는 데 건강보험 재정이 많이 소요된다면 단계적으로 확대해 가면 될 것이다.

 

한편 이번 정부 고시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승인해 줄 수 있는 약제 중 항암제와 기준초과 약제가 제외되고 준비할 서류가 많아 실효성이 없다며 벌써부터 몇몇 대형병원들은 울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엄살은 병원 쪽에서는 걱정할 것이 없어 보인다. 시간이 문제지 한 번 크게 터준 길에 몇 개의 작은 걸림돌들은 이내 정부를 압박하고 이에 호응하는 개념 없는 공직자들에 의해 치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평원은 “해당 약제의 사용을 승인받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기관에 대해서는 경고나 신청제한의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며 허가범위 초과 약제의 사용 승인이 남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본 계획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허가범위 초과 약제의 사용이 우려된다면 이러한 어설픈 계획을 철회하고 단계적인 급여확대로 보장성을 확대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비급여 부분까지를 포함한 환자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실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연구하는 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는 담당 공무원의 제대로 된 역할이다.

  이번 계획을 시작으로 국민의료비 중 임의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높아진다면 이와 반대로 민간보험 시장의 영역이 확대될 것이다. 지금의 급여 영역에 해당되는 법정 본인부담금 시장뿐만이 아니라 더욱 큰 시장으로의 확대를 꾀해 온 민간보험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수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이것 또한 현 정부의 ‘의료선진화’(의료민영화) 방안 중 하나인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감시의 눈을 더 크게 뜨고 볼 일이다.


얼마 전 보도를 보니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과다부과해 환자에게 돌려 준 환급금이 올해 상반기에만 58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 급여대상 진료비를 임의로 비급여 처리한 ‘불법임의비급여’가 여전히 가장 많다. 이 금액은 병원측에 이의를 제기해 환급받은 소수 환자들의 이야기다 보니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쓸 데 없는 돈까지 많이 지불한 것도 억울한데 의학적 근거가 없는 약들을 먹고 몸까지 더 안 좋아진 환자는 얼마나 될까? 정부는 지금 안전성도 담보할 수 없는 이러한 비급여 부분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나서 불법행위를 합법으로 포장하는 식으로 조장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국민의료비를 절감하고 보장성을 높여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