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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지_건약

인도 특허권 싸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2010 봄호]

[칼럼]

인도 특허권 싸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정책팀 송현숙


2009년 10월 중순 공동행동이 특허법 개정과 글리벡 소송 등의 안건으로 한창일 무렵, 인도로부터 메일이 날라왔다. 인도 역시 글리벡 소송 중이며 같은 사안으로 투쟁 중인 한국과 연대하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이. 하지만 인도의 상황이 어떠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국제 연대를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기에 판단을 유보하였다. 헌데 우연찮게도 11월, 서울대의 초청으로 방한한 UC. Irvine의 카우직 순더 라잔 교수가 글리벡과 관련하여 한국의 활동가들과 만나길 원하였고 함께한 자리에서 그는 인도의 의약품 접근권 관련 활동가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였다. 이에 양국의 의약품 접근권 현황을 공유하고 연대의 매듭을 만들고자 인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인도방문은 2010년 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이루어졌다. 15일 저녁 서울을 출발하여 16일 저녁 델리에 도착, 17일 하루 동안 각 단체가 분담한 바를 마무리하고 인도 측과 18~20일까지 공식일정을 가졌다. 18일 오전에는 델리 에이즈 감염인 네트워크 사무실에서 에이즈 관련 활동가들과 만나 각국의 에이즈 관련 현황에 대하여 공유하였다. 오후에는 인도의 ‘공감’이라 할 수 있는 Lawyer’s collective 사무실에서 에이즈와 법률, FTA, 글리벡에 대하여 브리핑을 하였고 19일에는 의약품 접근권 관련 활동가들이 모여 글리벡과 특허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20일에는 기스트 환자들의 비낫(글리벡 제네릭) 구매와 관련하여 낫코 관계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인도 특허법 section 3(d) 조항, 제약사의 ‘에버그리닝’ 전략을 방지하는 역할


3일 간의 일정에서 각 내용들을 관통하는 사안은 section 3(d)다. 참으로 낯선 이 용어는 효과의 개선 없이 기존물질을 변형한 것만으로는 특허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인도의 특허법 조항이다. 이 조항은, 원천특허를 바탕으로 변형된 특허를 단계적으로 출원함으로써 특허독점을 지속시키는 제약사의 ‘에버그리닝’ 전략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Section 3(d) 조항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글리벡 소송이다. 인도는 2005년 특허법이 개정되면서 물질특허가 제도화되었는데 이때 IMATINIB MESYLATE 특허신청에 대하여 암환자구호협회(CPAA)가 특허청에 사전이의(특허가 결정되기 전에 특정한 특허신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제기한다. 특허청은 사전이의를 받아들여 IMATINIB MESYLATE는 1993년 출원된 IMATINIB의 변형에 불과하다 보고 section 3(d)를 근거로 IMATINIB MESYLATE의 특허신청을 거절하였다. 노바티스는 이에 불복하여 2007년 마드리드 고등법원에 section 3(d) 규정과 특허청결정에 대하여 소를 제기하였다. 고등법원은 section 3(d)에 대한 노바티스의 소를 각하하고 특허청결정에 대한 소는 지적재산보호국(IPAB)로 보냈다. IPAB마저 특허청의 결정이 타당하다고 판결하자 불복의 대가, 노바티스는 2009년 8월, 대법원에 상소하여 소송 중에 있다.


만약 대법원이 노바티스의 손을 들어준다면, 인도의 특허권은 크게 강화되어 제네릭 의약품 생산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는 비낫과 2,3차 에이즈 치료제와 그 외 값싼 제네릭 의약품을 투약하던 많은 환자들이 해당 의약품을 손에 넣지 못해 치료를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이는 인도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한국의 기스트 환자들이 비낫의 구매 의사를 밝힌 것처럼 세계 각국의 환자들이 인도에서 생산되는 제네릭 의약품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특허권과 의약품 접근권 운동에 주는 시사점

 

이쯤에서 인도에 비추어볼 때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인도의 특허법은 한국에 비해 특허권이 공공성을 침해할 때 제어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상기에서 살펴본 사전이의제기(section 25)와 section 3(d)규정은 특허가 무분별하게 출원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특허의 폐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사전이의제기제도가 2006년 폐지되어 특허를 출원하기 전에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고 실질적으로 특허 심사가 엄격하지 않아 독점이 더 유리한 상황이다.


인도 역시 2005년 특허법 개정과정에서부터 section 3(d), 25 조항을 폐지하라는 외압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특허법 조항들을 지켜냈고 지금도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특허독점으로부터 의약품 접근권을 방어하기 위한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바로 특허법 강제실시 조항의 개정이다. 2009년 9월 ‘이윤을 넘어선 의약품 공동행동’은 특허법 중 강제실시 조항인 제 106조 개정을 발의하였고 2010년 1월 27일 국회본회의를 통과하였다. 개정안은 특허법의 수용과 특허발명의 실시를 분리함으로써 정부에 의한 강제실시 요건을 완화하였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강제실시는 이미 특허권을 지닌 제약사가 독점을 바탕으로 공급을 중단하여 의약품의 접근을 차단하는 폐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후적 조치에 그쳐서는 안되며 공공성을 침해하는 특허에 대하여 사전적으로도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참고] 인도의 글리벡 특허 무효화 운동

* 4월 18일 건약 상반기 행사 발표자료

 

 

1. 인도의 의약품

 

○ 인도의 의약품 공급현황

- 의약품 공급 규모: 전 세계 생산량의 8%

- 생산되는 의약품의 67%, 개발도상국으로 수출

- UN 아동기금 지원 의약품의 50%

-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에이즈 치료제의 90%

- 전 세계 에이즈 치료제의 50% 공급

 

○ 제네릭(generic) 의약품 중심의 생산

- 위궤양 치료제인 ‘오메프라졸(Omeprazole, 20mg)’의 경우 포르투칼에서 팔리는 오리지널 약의 가격은 인도에서보다 무려 19배가 높음('Patent and Price', 1999)

 

2. 특허법 진행

 

○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는 국내 의약품 수요의 약 85%를 외국계 제약회사에 의존.

 

○ 1970년 특허법 제정

 

- 인도에서 의약품 및 식품과 농약에 대해 인정되는 특허를 제조공정(process)에 관한 제법특허에만 한정. 인도의 제약업체들은 특허 보호 기간이 만료되기 전이라도, 제조 공정만 달리하여 특허 보호를 받는 오리지널 약과 같은 약을 만들 수 있게 됨.

- TRIPs 발효 전에는 다수의 국가들이 물질특허를 인정하지 않았음. 한국 역시 1987년 특허법 개정 전 까지는 물질특허를 인정하지 않음.

 

○ 2005년 특허법 개정

 

- WTO/TRIPs 체제의 시작(1995)

․ TRIPs 협정은 회원국에게 이를 자국 내 지적재산권 제도의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의무 부과.

․ 개발도상국의 경우 협정 의무 유예기간 10년. 이에 따라 인도는 유예기간이 끝난 2005년에 특허법 개정.

 

- TRIPs 협정 제27조 1항(특허대상)

․ 모든 기술 분야에서 물질 또는 제법에 관한 어떠한 발명도 신규성, 진보성 및 산업 상 이용가능성이 있으면 특허 획득이 가능.

․ 발명지, 기술분야, 제품의 수입 또는 국내생산 여부에 따른 차별없이 특허가 허여되고 특허권 향유됨.

 

- TRIPs 협정에 따른 물질특허 인정

․ TRIPs 협정의 이행은 협정 발효일인 1995년 1월 1일부터 소급 적용. 1995년 이후 인도에서 특허 출원을 한 의약품의 제네릭 의약품을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됨.

․ 또한, Mai Box 조항(TRIPs §70.8)에 다라 특허 출원한 발명은 5년 간의 독점 판매권도 인정. 단, 물질특허가 인정되는 2005년 까지만 보호됨.

 

- 2005년 특허법의 3가지 보완장치

․ Section 25: 이의 신청 제도

․ Section 92A: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

․ Section 3(d): 反-evergreening

 

- Section 25 : 특허 이의 신청 제도

․ 특허에 대한 공개 심사 기회를 보장.

․ 등록 전 이의신청(Pre-grant Opposition)은 출원공개 후 특허결정 전에 ‘누구나(any person)’ 할 수 있는 것이고, 등록 후 이의신청(Post-grant opposition)은 특허결정으로부터 1년 이내 ‘이해관계인(any person interested)’이 할 수 있음. 다국적 제약업체와 선진국들은 등록 후 이의신청 제도만을 담을 것을 요구.

․ 우리 특허법의 경우 2006년 특허이의신청제도가 폐지(제69조 삭제)되고, 특허무효심판제도에 통합. 무효심판의 청구인은 이해관계인 또는 심사관.(제133조 1항)

 

- Section 92A :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

․ 「도하선언문」(2001)의 이행을 위해 담겨진 것.

․ 특허법 제92A조에 의해 인도 정부는 특허 받은 의약품을 제조 역량이 없거나 불충분한 나라에 수출을 하기 위해 강제실시를 발동할 수 있게 됨.

․ 이 조항을 근거로 인도의 Nacto社는 네팔과 우크라이나에 로슈의 폐암치료제 타세바(Tarceva, erlotinib)와 화이자의 신장암 치료제 Sutent(sunitinib) 등 두 개의 의약품을 수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강제실시권을 신청. 이러한 강제실시권 조항을 활용한 나라는 2004년 이래 르완다에 에이즈 치료제를 수출하려 한 캐나다가 유일.

 

- Section 3(d) : 反에버그리닝(evergreening)

․ 기존에 알려진 물질에 대해 이미 알려진 그 물질의 효능을 개선시키지 않는 경우 단순히 그 물질의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는 것은 발명으로 볼 수 없다고 규정.

․ 반론 : TRIPS 협정이 규정하고 있는 “신규성, 진보성 및 산업상 이용가능성”이외에 “화학적으로 새로운 물질(NCE: New Chemical Entities)”이어야 한다는 추가적인 요건 부과. 그러나 현재 미국에서 특허를 받고 있는 제품의 70%가 기존의 의약품에 기초해서 이를 새로운 버전으로 개량한 약품(2007). 이러한 신약 개발업체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인도의 새로운 규정에 대한 이들의 불만은 클 수 밖에 없었음.

 

 

3. 글리벡 특허 무효화 소송 경과

 

○ 글리벡의 특허 출원

․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Novartis)는 1993년 최초의 표적 항암제인 글리벡에 대한 특허를 각국에서 출원. 이후 노바티스는 1993년의 특허를 상품화한 글리벡 베타 결정형(beta-crystalline)을 개발하여, 전 세계 시장에서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림.

․ 인도에서는 1998년에 글리벡 베타 결정형에 대한 특허를 출원. 인도 정부는 TRIPs 협정을 비롯한 WTO 협정 의무 이행을 위해, 협정 발효일인 1995년 1월 1일 이후의 발명에 대해서는 특허를 출원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 이후, 2003년 12월 이 베타 결정형에 대한 5년간의 독점 판매권(EMR) 부여 받음.


○ 글리벡의 특허 무효화 소송 배경

․ 노바티스의 글리벡 베타 결정형 특허 출원 이전, 인도내 10개의 제약회사가 글리벡 베타 결정형의 제네릭 의약품을 생산 中.

․ 2003년 당시 인도에서 노바티스가 판매하는 글리벡의 한 달 약값이 2,667달러였던 반면, 글리벡의 제네릭 의약품은 89~267달러. 그러나 노바티스의 독점 판매권 획득, 그리고 2005년 이후 물질 특허가 인정됨에 따라 인도 내 다수의 회사들이 제네릭 의약품 생산을 중단.

․ 2005년 인도의 암환자단체인 CPAA(Cancer Patients Aid Association), 글리벡 베타 결정형 특허 이의 신청.

 

○ 첸나이 특허청의 글리벡 특허 기각 결정

․ 2006년 1월 인도 특허법 ‘Section 3(d)’를 근거로 노바티스의 글리벡 베타 결정형 특허 출원을 기각.

․ 인도의 특허법은 1995년 1월 1일 이후에 처음으로 승인된 특허만 인정을 하는데, 노바티스가 특허 출원한 글리벡 베타 결정형은 1995년 이전에 이미 알려진 물질, 즉 1993년에 개발된 최초의 글리벡을 약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허권을 부여할 수 없다고 판단.

․ 의의 : ‘Section 3(d)’의 취지가 특허를 이용한 시장 독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특허 남용 행위인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을 막기 위한 것임을 천명함.

 

○ 글리벡 특허 무효화 소송 경과

․ 2006년 5월 노바티스는 특허청의 결정에 대한 불복, 인도 특허법 Section 3(d)의 TRIPs 협정 위반을 주장하며 지적재산권 항소 위원회(Intellectual Property Appellate Board, IPAB)와 마드라스(Madras)고등법원에 각각 소송을 제기.

․ 고등법원 : 국내법이 국제 무역조약에 맞는지를 판단할 사법권(jurisdiction)이 부족하므로 소송 기각.(2007)

․ IPAB : “그러한 높은 독점가를 지지하도록 허용하는 특허는 공공질서(public order)에 반한다.”(2009)

․ 노바티스, 2009년 8월 대법원에 소송 제기.

 

 

4. 특허법과 관련된 국제적 논의들

 

○ 국제적 논의 검토의 필요성

․ 인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소송 및 투쟁들은 지적재산권을 국제적인 대항 흐름들과의 관련.

․ 국제적 논의들은 각국에서 존재하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운동의 흐름과는 괴리가 있지만, 이를 중심으로 한 제3세계 국가들과 NGO들의 연대의 위상이 강화되는 中.

․ 인도의 글리벡 특허 무효화 소송의 배경이 된 section 3(d) 역시 제약자본과의 갈등 속에서 구축한 국제 연대의 성과물이었다는 사실은 분명 주목해야 할 부분. 글리벡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Lawyer Collective 역시 UN 틀 내에서 진행 중인 이러한 논의들을 주목하고 있음.


○ 논의 경과

․ 초기의 비판은 독점에 따른 여러 피해 사례들의 고발과, 지적재산권의 유인효과(incentive)론에 대한 회의 등이 주를 이뤄왔으나, 2000년대 이후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한 대항 담론의 구성으로 진전.

 

○ 도하 선언문(2001)

․ 지적재산권에 대한 대항 담론이 국제적 논의에서 공식화 된 계기.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확보를 비롯한 공공의 건강 보호가 제약회사의 특허권 보호보다 중요”

․ “공공의 건강” : ‘공공영역의 보장’과 ‘인권의 보호’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대항 담론의 중심에 서게 됨.

 

○ 공공영역 : WIPO의 Development Agenda

․ 2003년, 국제 NGO와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TRIPs 협정 발효 이후 지식이라는 공공재의 사유화가 낳은 폐해를 지적하며,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 지적재산권 제도와 공공정책과의 관련성을 논의할 것을 촉구.

․ 이후 WIPO내에서 3차례의 정부 간 회의와 4차례의 위원회 회의를 거쳐, 지적재산권 보호와 공공의 이익 사이의 공정한 균형과 공공영역의 촉진을 위한 규범 제정 활동 등에 관련된 45개의 제안이 채택되어, 이를 실행할 위원회(CDIP, Committe for Development and Inteleectual Property)를 설치하기로 결정.(2007)

 

○ 인권 : CESCR의 『일반논평 17』

․ UN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가 발표한 『일반논평 17』(2005)은 지적재산권 제도에서 인정하는 법적권리는 ‘저자의 권리’를 비롯한 기타 인권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주로 기업의 이익과 투자를 보호하는 이러한 법적 권리는 일시적이며 철회될 수 있는 것임을 밝힘.

․ “어떠한 발명의 상업화가 생명권, 건강권 및 사생활보호 등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의 완전한 실현을 위태롭게 할 경우 이러한 발명을 특허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에 반하는 과학적 및 기술적 진보의 이용을 방지하여야” 함을 명시.